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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양자역학

슈테른-게를라흐 실험

양자역학이 태동하게 된 계기에는 무엇이 있을까? 물론 여러 가지 사건들이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막스 플랑크가 빛의 에너지가 양자화되어 있다는 가설을 처음 도입하여 해결한 '흑체복사' 문제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슈테른-게를라흐 실험도 그에 못지 않게 양자역학의 초기 역사에 영향을 준 실험으로, 스핀이 양자화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슈테른-게를라흐 실험에 사용된 도구인 '뒤보아 자석'은 불균일한 자기장을 만들어 자성 입자를 자기 모멘트의 방향에 따라 분리할 수 있는 장치다. 두 자석의 모양이 다르기 때문에, 그 사이의 자기장이 균일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불균일한 자기장이 필요한 것일까? 나침반을 생각해 보면, 지구 표면의 거의 균일한 자기장에 의해 특정 방향으로 자석이 정렬된다. 하지만 양쪽 극에 방향만 반대이고 크기가 같은 힘이 작용하기 때문에 자석이 이동하지는 않는다. 반면, 불균일한 자기장에 자석을 놓는다면 양쪽 극에 작용하는 힘의 크기가 다르게 되어 자석이 이동하게 된다.

자성 입자로는 은 입자가 사용된다. 오븐에서 은을 뜨겁게 가열하고, 작은 구멍을 통해 나오는 기화된 입자 빔을 뒤보아 자석에 통과시키는 것이다. 뒤보아 자석의 배열에 따라 여러 가지 실험이 가능하고, 맨 마지막에는 스크린을 놓아 입자들이 어떻게 분리되었는지를 관찰할 수 있다.

자기 모멘트 X, 스핀 O

슈테른-게를라흐 실험 이전까지 원자의 자성을 이해하는 방식은 고전적인 자기 모멘트였다. 원자 각각을 작은 자석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자석은 아무 각도로나 기울어져 있을 수 있다. 즉, 자기 모멘트는 연속적이다. 하지만 슈테른-게를라흐 장치의 가장 간단한 형태인 뒤보아 자석 하나만으로도 이러한 연속적인 자기 모멘트 개념이 원자 하나를 설명하는 데 적합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우선 뒤보아 자석을 수직(\(z\)축 방향)으로 놓자. 그리고 편의상 앞으로 이런 장치를 SG-\(z\)라고 하자. 여기에 은 입자의 빔을 통과시키고, 그 뒤에는 스크린을 놓자. 이렇게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은 입자가 자성을 띄기 때문에 불균일한 자기장을 지나면서 위나 아래로 이동할 것이고, 원자마다 자기 모멘트가 기울어진 정도가 달라서 이동하는 정도도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가늘었던 빔이 위아래로 넓게 퍼질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실험 결과, 은 입자의 빔은 위와 아래 두 갈래로 갈라졌고, 그 사이로 진행하는 빔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연속적인 자기 모멘트가 아닌, 위와 아래의 값을 가지고 그 '중간'이 허용되지 않는 불연속적인 스핀의 도입이 필요해졌다.

\(x\)방향과 \(z\)방향의 관계

위의 가장 간단한 실험에서, 뒤보아 자석을 수평(\(x\))방향으로 놓은 장치(SG-\(x\)라고 하자)로 SG-\(z\)를 대체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빔이 왼쪽과 오른쪽 두 갈래로 갈라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x\)방향의 스핀과 \(z\)방향의 스핀은 서로 독립적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SG-\(z\)를 통과한 빔 중 위쪽으로 갈라진 빔을 다시 SG-\(x\)에 통과시키고, 그 뒤에 스크린을 놓아 관찰해 보자. 그리고 SG-\(z\)에서 아래쪽으로 갈라진 빔은 다른 곳에 영향을 주지 않게 쓰지 않는 스크린으로 막아버리자. 자, 그러면 빔은 어떻게 갈라질까?


예상했겠지만, SG-\(x\)를 통과한 빔은 왼쪽과 오른쪽 두 갈래로 갈라진다. SG-\(z\)에서 아래쪽으로 갈라진 빔을 사용해도, SG-\(x\)과 SG-\(z\)의 순서를 바꾸어도 마찬가지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비슷한 작업을 한번 더 진행하면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SG-\(z\)를 통과하여 위쪽으로 갈라진 빔을 골라 SG-\(x\)에 통과시키고, 여기서 왼쪽으로 갈라진 빔을 SG-\(z\)에 다시 통과시키자. 빔은 어떻게 될까?

직관적으로 생각해 보자. 우리는 맨 처음 SG-\(z\)에서 위쪽으로 갈라진 빔만 골랐다. 그렇다면 중간에 \(x\)방향으로 무엇을 했든, 빔을 SG-\(z\)에 다시 통과시켰을 때는 위쪽으로만 갈라지지 않을까? 그런데 또 다른 생각도 할 수 있다. 우리는 SG-\(x\)에서 왼쪽으로 갈라진 빔만 골라 마지막 SG-\(z\)에 통과시켰다. 앞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무시하고, SG-\(x\)와 SG-\(z\)만 고려한다면 위쪽과 아래쪽 두 갈래로 갈라져야 한다.

실험 결과는 후자와 같다. 즉, 중간에 \(x\)방향의 스핀을 측정한 것이 이미 측정한 \(z\)방향의 스핀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이걸 어떻게 설명할까..?

슈테른-게를라흐 실험을 통해 스핀은 불연속적일 뿐만 아니라 고전적인 직관과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양자역학이 등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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