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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양자역학

양자역학의 공리

물리 현상들 중, 고전역학으로는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지 않다면 양자역학이 도입되어야 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지난 포스트에서 다루었던 슈테른-게를라흐 실험 또한 양자역학이 도입되어야 한 이유 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양자역학과 고전역학은 정확히 어떤 면에서 다를까? 흔히 양자역학은 원자와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적인 현상을, 고전역학은 일상적이고 눈에 보이는 거시적인 현상을 설명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렇게 현상적으로 드러나는 차이점이 아닌, 물리 이론으로써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은 어떻게 다를까?

수학에서 공리는 특정 공리계 안에서는 언제나 참인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공리들을 가정한 상태에서 규칙에 알맞게 논리를 전개해나가는 것이다. 물리 이론도 수학과 별반 다르지 않다. 마찬가지로 공리들에서 출발하여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들을 설명하고 앞으로의 현상을 예측한다. 단지 실제 현상과 잘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제약이 있을 뿐이다. 양자역학에서는 어떠한 (우리의 직관과는 먼) 공리들을 가정하는지, 그리고 고전역학에서는 어떤지를 알아보자.

양자역학의 공리 5가지

1. 물리계의 상태는 힐버트 공간의 벡터에 대응된다.

갑자기 힐버트 공간이라는 듣도보도 못한 용어가 나와 당황할 수 있지만, 일단은 단순히 어떤 조건들을 만족하는 벡터 공간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물론 고전역학에서도 물리계의 상태를 나타내고자 할때 벡터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어떤 물체의 운동을 다룬다면 상태를 기술하기 위해서는 물체의 위치와 운동량(또는 속도)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물체의 위치와 운동량은 벡터로 표현된다. 그러나, 고전역학에서 사용되는 벡터는 직관적인 의미를 가진다. 예를 들어 위치 벡터의 경우, 각각의 성분 방향으로 얼마나 이동해야 하는지를 나타낸다. 반면 양자역학에서는 1차원 운동을 다루기 위해서도 무한 차원의 힐버트 공간이 필요할 정도로, 벡터의 의미가 직관적이지 않다.

2. 물리량은 힐버트 공간에서 작용하는 자기수반 연산자에 대응된다.

'연산자'라고 표현하면 다소 추상적으로 들리지만, 일단은 행렬이라고 이해하자. $n$차원 열벡터 $\mathbb{v}$와 $n \times n$ 행렬 $\mathbb{A}$에 대해 $\mathbb{A} \mathbb{v}$ ($\mathbb{A}$가 $\mathbb{v}$에 작용한 결과) 또한 어떤 $n$차원 열벡터가 될 것이다. 어떤 행렬 $\mathbb{A}$가 주어졌을 때, $\mathbb{A}$의 수반은 ($\mathbb{A}^\dagger$로 표시) 전치에서 각 원소의 켤레 복소수를 취한 값이다. (쉽게 말하자면, 행렬을 대각선에 대해 대칭시키고, 각각의 원소를 켤레 복소수로 바꾼다는 것이다)

3. 물리량을 측정했을 때 나올 수 있는 값은 대응되는 연산자의 고유값들 중 하나이다.

어떤 연산자 $\mathbb{A}$가 주어졌을 때, 연산자를 적용한 후의 벡터가 원래 벡터와 평행할 때, 즉 $\mathbb{A}\mathbb{v} = \lambda \mathbb{v}$를 만족하는 벡터 $\mathbb{v}$와 스칼라 $\lambda$가 존재할 때, 각각을 고유벡터/고유값이라 한다.

4. 물리량을 측정했을 때 특정한 값이 나올 확률은 보른의 규칙에 의해 결정된다.

드디어 양자역학 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확률'이 나왔다. 보른의 규칙은 "물리계의 상태가 $\vert \psi \rangle$로 주어졌을 때, $X$라는 물리량을 측정한 값이 $x$일 확률은 $\text{Pr}(X=x \vert \psi) = \vert \langle \varphi_x \vert \psi \rangle \vert ^2$ ($\varphi_x$는 $X$에 대응되는 연산자에서 고유값 $x$에 대응되는 고유벡터를 나타낸다) 로 결정된다"는 규칙이다. 고전역학은 결정론적이기 때문에, 어떤 값이 나올 확률은 정확히 0 또는 1이라는 점이 양자역학에서의 확률과 다르다.

5. 물리량을 측정한 후, 계의 상태는 측정된 고유값에 대응되는 고유벡터로 변한다. (투사 가설)

5개의 공리 중, 가장 논란의 여지가 많은 항목이다. 측정을 수행하여 물리량의 값으로 $x$를 얻는다면, 물리계의 상태 또한 $\varphi_x$로 변화한다, 또는 투사된다는 것이다.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에서는 투사 가설을 지지한다. 양자역학을 다루는 글에서 '측정을 수행하면 파동함수가 붕괴한다'와 비슷한 구절을 본 적이 있지 않은가? 여기에서 주장하는 '붕괴'가 바로 투사에 해당한다. 그러나, 모든 해석이 투사 가설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대표적으로, 여러 세계 해석에서는 가능한 모든 경우가 일어나기 때문에, 투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세줄요약

물리계의 상태 : 벡터, 물리량 : 연산자(행렬), 물리량의 측정값 : 연산자의 고유값

어떤 값으로 측정될 확률은 보른의 규칙에 의해 결정됨

측정 이후 물리계의 상태는 측정된 값에 대응되는 고유벡터로 변한다고도 함

And more...

양자역학에는 다양한 해석이 있다. 해석들은 양자역학의 각기 다른 부분을 수정하여 표준 양자역학이 아직 온전히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한 대답을 내놓지만, 대부분의 해석들은 위의 공리들을 따른다. (5번을 부정하는 경우는 꽤 존재하지만, 그 외의 항목을 부정하는 해석은 흖지 않다) 때문에 아무리 표준 양자역학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 공리들은 공부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은 공리에서 제시되는 벡터, 연산자 등은 어디까지나 이론적 도구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드 브로이-봄 역학과 같이 파동함수를 실재하는 파동으로 보는 이론(내지는 해석)도 있다는 점에서 판단은 독자들에게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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